비밀글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28세 때 저는 B형 간염을 앓고 지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제 스스로 신체의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당시 대한항공 입사 2년차였던 1985년 가을이었습니다. 일본 광고연수를 다녀와서 조금 쌀쌀해질 무렵 걸음을 걷다가 무릎이 툭툭 꺾이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약간의 피로가 느껴졌습니다.
“나이 든 선배들이 늙으면 무릎에 힘이 없어진다 하드만 내가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그래도 워낙 건강체질인 데다가 군대도 늦은 나이에 갔다 와서 아직은 체력으로 걱정해 본 적이 없었던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지금은 서울 노원구 하계동으로 이전한지 꽤 되는 을지병원이 당시에는 정말로 을지로 3가에 있었고 어쩌다 감기약이나 타러 가던 내과를 방문했는데 저를 맞은 의사는 당시 내과 과장 허인목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도 중심이 잘 잡힌 참 좋은 의사였다고 기억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더니 당연히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하십니다. 혈액채취를 하고 이틀 후에 방문했더니 차트를 읽으면서
“흠~ 간에 약간의 염증 소견이 있네...” 하기에
“옛? 간에 염증이 있다는 것은 바로 간염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요?”
“뭐, 이를테면 그런 얘기지...”
“아니, 선생님 간염을 이를테면 그런 얘기라뇨? 간염...심각한 거 아닌가요?”
“아, 아...흥분하지 말어! 나이도 젊고 아직 체력이 좋을 때니까 조금 쉬고 약 먹으면...”
보름치 약을 큰 봉투에 타 가지고 나오면서 군대 있을 때 눈이 완전히 노랗게 물들어 제대를 연기하고 의무중대에 입원했던 선임해병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군의관이 “사회에 나가서 간염 치료하려면 돈 많이 드니까 여기서 치료하고 나가. 소견서 써 줄 테니까...” 하는 말을 같이 들었고 그 후 집에서 개소주 달여 보온통에 단아 나르고 하는 것을 봤었습니다.
체력이 좋고 술 분해 능력이 뛰어나 매일 술을 먹다시피 하면서도 끄떡없던 저인지라 그 많은 술잔을 돌리던 중 누구 하나의 간염이 옮은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회식자리에 가서도 한 잔 정도만 먹는 시늉을 하고 술 생활을 쉬었습니다. 부모님이 알고 걱정하실까봐 혼자 조용히 큰 잉어 한 마리를 사다가 7시간쯤 고아서 식혀 묵이 된 것을 냉동실에 넣어 놓고 하루에 한 번(출근시간에는 챙길 수가 없으니까) 먹었습니다. 뭐 큰 의미는 없고 양질의 단백질 보충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건전생활을 한 열흘쯤 하니까 무릎도 꺾이지 않고 술을 안 먹으니 피로라는 것도 없어졌습니다. 보름 후 허인목 과장님을 만나러 가서는 제게 처방전을 써주고 있는데 대뜸
“선생님 검사 한 번만 다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왜?”
“이젠 몸이 달라요. 제 느낌을 압니다.”
“에잉~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성급하기로서니...쯪...간염이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닐세!”
“아뇨,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어도 좋습니다. 전 확신이 있어서요!”
이래서 마지못한 표정으로 허 과장님은(당시 거의 60세 가까이 되어 보였습니다) 검사 의뢰서를 끊어 줬고 저는 혈액채취와 함께 새로운 보름치의 약을 받아 들고 돌아갔습니다.
이틀 후 허 과장님과 다시 대면했습니다. 제가 들어가니까 그제야 차트를 넘겨 살피더니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합니다.
“선생님 뭐가 잘못되었나요?”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뭔데요?”
“음, 어쨌든 검사결과 60 넘던 GOT, GPT가 17, 19로 떨어졌어.”
“그럼 제 간염 이제 다 나은 건가요?”
“아, 그건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고 한 6개월 후에 다시 와서 검사 받아 봐!”“그럼 6개월 후에 괜찮으면 전 다시 간염 안 걸리는 거지요?”
“아냐 그건 그때 가서 항원, 항체 검사를 받아 봐야 해 항원이 존재하면 보균, 항체가 존재하면 바이러스에 의한 B형 간염에 대해서만 면역이 생긴 것으로 보지만 간염에는 C형 간염, 알콜성 간염 등 많으니까 방종하지 말고!”
“그럼 이틀 전에 받은 약은 안 먹어도 되는 거죠?”
“그건 끝까지 다 먹어 몸에 좋은 거야.”
“이런 항생제 같은 걸요?”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릴 하네, 간염환자에게 항생제 먹이면 죽어. 그건 비타민과 영양제야. 몸에 좋은 거라니깐?”
당시에는 지금처럼 항바이러스제 같은 약이 없었던 듯합니다. 영양제인 줄도 모르고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항생제라 생각하고 그 약을 먹었으니...‘염증 = 항생제’라는 무식한 공식을 대입했던 제가 스스로 우스웠습니다. 간염이라고 심각하게 겁주거나 검사 뺑뺑이 안 돌리고 찬찬하게 진료해주었던 옛날의 원로 의사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가집니다. 의사는 모름지기 이처럼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중심 잡힌 진료를 해야 하고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환자에게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저는 제 항체 여부로 인해 씁쓸한 기억을 갖게 됩니다. 아내가 골절상을 입어 영락교회 옆의 모 병원에 입원을 시켰는데 아내의 혈액검사를 하고 B형 간염 항체가 없어 예방접종을 한다면서 저도 검사를 해보잡니다. 저는 항체가 있다고 하였는데도 검사를 해봐야만 알 수 있고 항체가 있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항체가 약해지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항체가 한 번 생기면 평생 가는 것으로 들었는데 인상도 맘에 안 드는 중년이 이 원장 여의사는 기어이 제 혈액검사를 하였고 검사지를 들고 와서는 예상했던 대로 항체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역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고 우깁니다. 저는 그 접종 받지 않았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게 쓸데없는 과잉진료를 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아내의 진료비를 청구할 때도 처음 얘기했던 것과 상당히 다르게 너무 많은 금액을 청구했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듣고 보니 그 병원이 과잉진료와 바가지로 유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7년 후 제가 다른 병원에서 항원, 항체 검사를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의사는 “무슨 말씀이예요, 한 번 생긴 항체가 없어지는 경우가 어디 있다고...잘 못 들으셨겠죠. 항체 분명히 제대로 있습니다.”
제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아내 입원비 바가지 씌웠던 그 병원 지금 검색해 보니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젠 그 원장이 할머니가 되어 은퇴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경영을 하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런 사람은 의사가 아닌 청진기 든 도적입니다.
요즘 병원을 가보면 특히 대형병원에서는 수 십 년 전문의 경험으로 쉽게 진단할 수 있는 사항도 어김없이 검사 뺑뺑이를 돌립니다. 얼마 전 장모님의 뇌 단층촬영 결과 후두엽에 제법 큰 공백이 있어서 치매와 관련된 소견을 들어보고자 뇌졸중, 치매 전문병원이라 알려진 어떤 병원에 MRI C/D를 가지고 진료신청을 했는데 웬 들어보지도 못한 50만원짜리 ‘뇌 혈류검사’라는 이상한 검사를 받게 하고서야 장모님보다 더 먼저 돌아가실 것 같이 늙은 원장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흐음...비싼 MRI 검사는 다른 병원에서 받고 오셨고...” 하며 상담을 시작합니다.
병원은 가지 않으려 한다고 가지 않아지지는 않지만 지금은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의학적 지식은 스스로 공부하고 알아야 합니다.
GOT,GPT는 간세포에 있는 효소입니다. 이수치는 간세포의 염증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 수치들은 염증 정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검사시약과 방법에 따라 기준치는 약간 차이가 나는데 GOT의 정상범위는 통상적으로 0~40, 45 정도이고 GPT는 0~35 정도입니다. 제가 30년 전에 60 정도의 수치가 나왔던 것은 사실 그리 높은 것이 아니고 제가 몸의 신호에 민감했기에 면역을 가지게 되는 과정으로 약한 간염 상태가 지나가는 것을 감지했던 것입니다.
보통 급성 간염일 때는 이 수치가 1천 단위 이상 오르는 경우가 많고 만성 간염일 때는 수십∼수백 대를 오르내립니다. 만성 간염일 때는 특히 수치의 변동이 오래 반복됩니다.
간염뿐 아니라 지방간, 간 경변, 간암 같은 때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상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간질환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수치들은(특히 GOT) 간질환이 아닌 심장질환, 근육질환으로도 상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성(熱性)질환인 화상, 심근염, 심근경색, 콩팥이상, 갑상선, 당뇨 등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